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일상 탈출...

갑사(甲寺). 계룡산(鷄龍山). 공주시(公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남도

갑사(甲寺). 계룡산(鷄龍山). 공주시(公州市)

세계속으로 2008. 2. 9. 01:39

갑사(甲寺). 계룡산(鷄龍山). 공주시(公州市). 충남(忠南)

 

대웅전

 

장승

 

 

 

일주문

 

 

 

 

 

 

 

 

 

 

 

 

 

 

 

갑사 철당간 및 지주

보물 제 256호

소재지 :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철당간. 지주는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한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cm 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 m 이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

 이 철당간. 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 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된다.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안내문에서 -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철당간은 지름 50cm의 철통 28개를 연결하였던 것이나, 고종 35년(1899) 폭풍우에 벼락을 맞아 4절이 부러졌다고 하며 현재는 24절만 남아 있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 출처 : 갑사 -

 

 

 

 

 

대적전

 

부도()

보물 제 257호

 

갑사 부도(浮屠)는 전체 높이가 205cm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전하며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양식을 겸비하고 있다. 본래의 위치는 갑사의 중사자암에 위치했던 것을 현 대적전 앞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대석(臺石), 탑신(塔身), 옥개(屋蓋)와 상륜부(上輪部)를 갖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상륜부는 오래전에 결실되었다고 전한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下臺石]에는 사자·구름·용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그 표현이 힘차 보이고, 가운데받침돌[中臺石] 역시 8각형이나 볼륨있는 조각 수법으로 마치 원형에 가깝고 각 귀퉁이마다 꽃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양각되어 있다. 윗받침돌[上臺石]에는 32엽의 연꽃 연화문(蓮花紋)을 둘러 새겼다. 탑신 역시 8각으로 각 면에 문과 열쇠를 새겨 놓았고, 그 사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8각정 지붕형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서까래, 부연, 용마루 등이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후대에 만들어진 보주(寶珠 :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올려 전체적인 모습은 섬세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기백이 넘쳐 흐른다.

- 출처 : 갑사 -

 

 

 

 

 

갑사 공우탑()

 이 탑은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개울 건너 계곡변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갑사의 부속 암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하고 있다.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신의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2. 3 층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탑의 건립은 옥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세웠던 소로 인해 이루어 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명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

- 안내문에서 -

 

갑사 경내의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계곡변에 위치하고 있는 이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음각되어 있고 2층의 탑신에는 『우탑(牛塔)』이란 이름과 3층 탑신에는 『공(功)』이란 명문이 각각 음각되어 있다.

이 탑은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세운 소가 늙어 죽으니 그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 출처 : 갑사 -

 

 

 

 

대웅전

 

 

 

범종루

 

 

 

 

 

 

 

 

갑사강당

 

강당 편액()

강당에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데, 백판(白板)에 양각(陽角) 청서(靑書)로 쓰인 이 글씨는 말미에 정해국추절도사홍재희(丁亥菊秋節度使洪在羲)라고 되어 있어1887년(고종 24) 충청 절도사 홍재희(洪在羲)가 쓴 것이다.

- 출처 : 갑사 -

 

 

사천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