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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안내. 공주시(公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남도

공주 공산성 안내. 공주시(公州市)

세계속으로 2013. 5. 15. 16:00

공주 공산성 안내. 공주시(公州市). 충남(忠南)

 

영화의 고장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의 혈투" 촬영장소

이강천 감독의 영화 <공산성의 혈투>(1968년)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공주로 도읍을 옮기던 무렵을 배경으로 한 사극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모는 곧 백제 웅진시대의 토대를 닦은 동성왕이며 이 영화에는 그가 왕위에 즉위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 배경이기도 한 이곳 공주시의 공산성과 곰나루, 마곡사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공산성의 풀피리'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인기 라디오드라마였는데 1968년에 임희재의 각본과 이강천의 감독으로 영화화하면서 <공산성의 혈투>로 그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박노식, 문희, 허장강, 박성호 등 당대의 인기배우들이 출연하였습니다.

- 안내문에서 -

 

1. 금서루 입구 비석군         2. 목사 김효성 비       3. 제민천교 영세비       4. 공산성 금서루

5. 공산성 백제 건물지         6 공산성 쌍수정         7. 쌍수정 사적비          8. 추정 왕궁지

9. 공산성 연못                  10. 공산성                11. 공산성 12각 건물지 12. 임류각지

13. 공산성 강당지              14. 공산성 장대지      15. 임류각                  16. 명국삼장비

17. 공산성 광복루              18. 공산성 만아루지   19. 공산성 영동루         20. 영은사

21. 공주 공산성 연지          22. 만하루                 23. 공주 잠종냉장고     24. 공북루

25. 공산정.

 

사적 제 12호

 

백제가 서울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 m의 공산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 에 이른다.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성의 이름은 처음에 웅진성(熊津城)으로 불렀다가 고려시대 초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렀다

백제 멸망 직후 의자왕이 일시적으로 머물렀고,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충청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이괄의 난(1624)때에는 인조가 이 성으로 피난 하였다.

성 안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하여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지 및 만하루, 임류각 등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웅진 (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공산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사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졌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 이후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현재는 동쪽의 735m 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성이다.

 

성의 길이는 총 2,660m 이고, 동서남북 네 곳에서 문 터가 확인되었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1993년에 동문과 서문을 복원하여 각각 영동루와 금서루로 명명하였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감영을 비롯해 중군영 등 중요한 시설이 있었다. 현재 성내에는 추정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임류각지, 연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 그리고, 조선시대 유적인 쌍수정, 영은사, 쌍수정사적비, 만하루, 명국삼장비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2011년 10월에는 백제의 옻칠가죽찰갑옷을 비롯해 마갑과 화살촉, 철제 무기류 등이 출토되었는데, 갑옷에 645년이라는 글씨가 남아있어, 갑옷의 제작 및 사용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을 낀 공주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트래킹을 하기에도 최적의 장소이므로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 안내문에서 -

 

공산성 깃발 이야기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고분군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을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의 개념이나 형상이 표현된 것은 삼국시대에 중국 문화의 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송산리고분군 6호분 벽화의 사신도는 당시 왕성했던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국제교류를 보여준다.

 

깃발의 바탕색은 황색이다. 이것은 백제의 나라색이며 백제시대 사람들은 황색을 우주의 중심이 되는 색으로 생각하여 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깃발의 테두리는 사신도의 각 동물이 상징하는 색을 반영한 것이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고분군 6호분에서 사신도가 발견될 당시 사신도가 벽면에 그려져 있던 위치이며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배치 하였다.

 

 

 

고마나루 명승길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