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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건물지(統一新羅 建物址).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行宮). 광주시(廣州市) 본문
통일신라 건물지(統一新羅 建物址). 남한산성 행궁(南漢山城行宮).
광주시(廣州市). 경기도(京畿道)
삼국사기에 따르면 통일신라는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12년(672) 한산주에 둘레가 8 km 에 달하는 거대한 성을 쌓았다.
당시에는 주장성으로 불렸는데, 바로 지금의 남한산성이다.
통일신라건물지 역사적 배경
통일신라가 주장성을 쌓은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 투쟁에 들어간 시기이며, 특히 문무왕 12년(672)은 당나라 병력 5만명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신라를 침입하려는 의도를 보인 시기였다.
주장성은 당나라와의 전투에 대비하여 축조된 성으로 한강 유역을 지키는 통일신라의 가장 중요한 요새였다.
나는 죽은뒤에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고자한다.
- 문무왕
통일신라건물지 발굴현황
발굴 연대기
1차-5차 1998-2003 남한산성 행궁지 조사
1998년부터 행궁지와 주변에 대한 조사를 통해 행궁. 좌전 영역을 확인하였고, 복원을 위한 다양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게 된다.
6차 2003-2004 하궐지 조사
하궐 외행전 앞 마당에서 통일신라 시대 기와. 초석(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돌)이 확인되었는데, 삼국사기의 통일신라 주장성과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하궐
하궐 외행전 발굴조사
하궐 어도
하궐 외행전 앞마당에서 발견된 대형기와
7.8차 2005-2008 통일신라건물지 조사
통일신라건물지는 길이 53.5m (16칸), 폭 17.5m (6칸)로 지금까지 산성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중 최대 규모이다.
통일신라건물지 바깥기둥 위치
벽체 모습
벽체 외부모습
건물지 모서리 초석
기와저장소에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대형기와
통일신라시대 대형기와와 조선시대 기와의 크기 비교
통일신라시대 대형기와와 조선시대 기와의 무게 비교
발굴단면 토층도
외행전과 통일신라 건물지 벽체 사이에 있는 토층으로, 통일신라시대 기와가 많이 발견되었다.
기와포함층 I
조선시대에 건물을 짓기 위해 주변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기와를 바닥에 깔아 지형을 메움
기와포함층 II
통일신라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됨
기와포함층 IIII
통일신라건물지의 배수시설과 관련이 있음
기와포함층 IV
통일신라건물지의 배수시설과 관련이 있음
기와포함층 V
통일신라시대 기와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음
통일신라건물지 토층현황
벽체부분
4. 벽체 판축층 : 2 m 두께의 벽체를 만들기 위해 진흙에 물을 뿌리면서 층층히 다져 쌓음
벽체아래
3. 목탄층 : 방수를 위하여 두께 10cm 정도 숯을 깔아놓음
2. 기저부층 : 모래와 자갈을 다져 넣음
1. 대지 조성층 : 건물을 올리기 전에 생땅이 나올때까지 흙을 파고, 굵은 깨진돌(할석). 풍화된 흙(마사토). 진흙(점토)을 교대로 깔고 견고하게 다짐
※ 이와 같이 1.5m 이상 견고하게 다지는 방법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기술임
예) 경주 사천왕사지, 신라 왕경 등
통일신라건물지 복원예상도
무게 20Kg에 이르는 초대형 기와를 얹은 통일신라시대 대형건물은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군수창고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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