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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南門)(지화문. 至和門). 남한산성(南漢山城). 성남시(城南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남문(南門)(지화문. 至和門). 남한산성(南漢山城). 성남시(城南市)

세계속으로 2015. 9. 17. 16:15

남문(南門)(지화문. 至和門). 남한산성(南漢山城).

성남시(城南市). 경기도()

 

남문. 지화문 南門. 至和門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남문은 남한산성에 있는 4대문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현재에도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동문, 남문, 수구문의 세문을 수축하였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문은 인조 2년(1624) 수축되기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남문은 정조 3년(1779)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 1976년 문루를 복원하였고 2009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하여 전면에 현판을 설치하였다.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올 때 바로 이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남문 좌 성외 / 우 성내

1892-1893년 / 경기도 박물관 소장

 

남문은 정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남한산성 4개의 문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다. 이 문은 정조 3년(1779)에 기존의 성문 자리에 새로이 문루를 마련하면서 성문 이름을 지화문(至和門)이라 명명하였다. 1892-1893년 사이 이폴리트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남한산성의 남문사진이다. 프랑뎅은 1892년 4월 조선 주재 제 2대 프랑스 영사 및 전권공사의 신분으로 조선에 들어와 1894년 2월 프랑스로 돌아갈 때까지 외교관으로서 조선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과 주변의 산하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때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4대문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있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문앞에 식재된 (350년 추정, 성남시 보호수) 느티나무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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