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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음성군(陰城郡)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북도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음성군(陰城郡)

세계속으로 2017. 2. 23. 15:00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음성군(陰城郡). 충북(忠北)

  

'은총과 치유의 빛이 가득한 한국의 루르드'

 

옛 장호원 성당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의 영성>

성모님께 봉헌된 터입니다.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신비가 있는 곳입니다.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배출된 신앙의 못자리입니다.

한국 최초의 성체대회가 열린 곳입니다.

그래서 은총과 치유의 빛이 강한 곳입니다.

 

우) 27602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357-2)

 

매괴성모순례지 사무실 / 043) 881-2807, 881-2808

성당 / 043) 881-2809, 모사전송 / 043) 877-9880

www.maegoe.com  다음카페: 감곡매괴성모순례지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감곡성당이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되고

매괴성모순례성당이 된 사연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신부였던 임 가밀로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 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 부락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 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성모님께 기도한 후부터 1년 4개월만에 그리고 우연하게도 1896년 5월 성모 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묵주 기도 어머니의 축일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이 된 것이다.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은 늘 성모님께서 함께 하시며 성모님의 본연의 역할인 전구하심이 크게 드러나는 곳입니다.

 


 

 

성모광장 / 성체거동

성모광장

1943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을 닦자 임 가밀로 신부가 무염시태(無染始胎, 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었음을 뜻하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2년 만에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물러나게 된다. 신사 터가 될 뻔 했던 곳이 1955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광장으로 봉헌되었고, 매년 거행되는 성체거동 때 현양대회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성모성월에 성모의 밤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된다.

 

▲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선포

 

지방 최초의 성체신심행사 성체거동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의 성체거동은 지방에서 거행되는 최초의 성체신심행사였다. 성모님 사랑을 바탕으로 신앙의 기초를 놓았고 우리 신앙의 핵심은 성체안에 현조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성체성사가 신앙생활에 중심이라는 거슬 깊이 심어주기 위해 1914년부터 한국 최초의 성체신심행사인 성체거동을 거행하였다. 1914년 성체성혈 대축일 이래 전쟁 등의 어려운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거행되고 있다. 이 행사는 매년 10월 첫 주 목요일, 성대한 사제단의 행렬로 시작하여 미사와 함께 성체강복으로 끝나게 된다. 성체신심에 대한 중요한 신심행사는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계 성체신심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성체 공경을 표현하는 신심행위로 자리매김 되었다.

 

▲ 성체거동

 


 

수난 받은 매괴 성모님

매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 되었다. 한국전쟁 때 성당은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됐는데 인민군이 성당 안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7발을 맞고도 성모상이 부서지지 않자 기관단총으로 사격을 했으나 총알이 피해갔다. 그래서 성모님을 끌어내리려고 올라갔을 때 성모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들은 성모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성당에서 철수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이 성모상은 '칠고의 어머니' 또는 '매괴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성모님상 앞에서 또는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많은 이들이 외적 내적 치유를 받고 있다.

 


 

 

임 가밀로 신부 / 매괴성모순례지

임 가밀로 신부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51년 동안 감곡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셨던 임 가밀로 신부는 1947년 10월 25일 "성모여, 저을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와 신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잘 말해준다.

임 가밀로 신부는 프랑스 타르브교구 빌레아두르라는 지방에서 태어낫다. 그곳은 루르드에서 20Km 떨어진 곳으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정기적으로 루르드를 방문하여 루르드의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성장했다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 임 가밀로 신부와 느티나무

 

신앙의 못자리, 성소의 못자리, 매괴성모순례지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어머니 성당이다. 성모님 사랑과 성체 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이며 성소의 못자리이다. 150여명의 성직자, 수도자를 배출한 곳으로 임 가밀로 신부를 통한 성모님 사랑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은 감곡본당 신자들만의 순례지가 아닌 모든 신자들의 순례지로서 성모님의 사랑과 신앙을 체험할 수 있는 매괴성모순례지와 기도의 순례지로 감곡성당이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결실, 역사에 드러난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 은총의 여러 표징들, 오랜 세월 꾸준히 증가하는 많은 신자들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순례를 숙고한 끝에 지난 2006년 10월 7일 청주교주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으로 승인하고 공식적인 선포식을 가졌다.

 

매괴박물관 (충청북도 최초의 석조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