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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안교(萬安橋). 안양시(安養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만안교(萬安橋). 안양시(安養市)

세계속으로 2017. 3. 9. 14:20

만안교(萬安橋). 안양시(安養市). 경기도(京畿道)

 

만안교(萬安橋)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소재지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정조(正祖,1776~1800 재위)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陵)을 참배하러 갈때 행렬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진 돌다리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州)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자주 참배하여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능행길은 원래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고 노량진과 동작을 거쳐 과천을 지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에는 다리가 많고 고갯길이 있어서 행차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과천에는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金尙魯)의 형 김약로(金若魯)의 묘를 지나게 되므로 정조가 이를 불쾌히 여겨 시흥으로 길을 바꾸며 이곳 안양천을 지나게 되었다.

정조 19년(1795)에 당시 경기도 관찰사 서유방(徐有防)이 왕명으로 3개월의 공사 끝에 다리를 완성하였으며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무지개 돌다리로 평가된다.

원래 위치는 남쪽으로 약 460m 떨어진 안양교 사거리의 교차지점에 있었으나 1980년 도로 확장으로 이곳에 옮겨 복원되었다. 만안교 옆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曹允亨)이 쓴 만안교비(萬安橋碑)가 있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만안교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 하러 갈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널 수 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이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참배행렬이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 때문에 행차로를 닦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노변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의 형 약로의 묘가 있어 이를 불길하다 하여 시흥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이 다리는 처음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임시로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가설한 후 바로 철거하였다. 하지만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러움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하게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조 19년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영구적인 돌다리로 축조하였다. 축조양식이 정교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리 앞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쓴 만안교비가 있어 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해 주고 있다.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 2동

노선명 : 만안교

길이 : 31m

도로관리청 : 경기도 안양시청

주제 : 역사성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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