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
다산 정약용 생가(與猶堂). 남양주시(南楊州市) 본문
다산 정약용 생가(與猶堂). 남양주시(南楊州市). 경기도(京畿道)
여유당(與猶堂)
생가 여유당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으로 집 앞으로 내(川)가 흐르고 집 뒤로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선생은 수각(水閣)이라고도 표현하였다.
당호(堂號)인 여유(與猶)는 선생이 1800년(정조 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기(與猶堂記)를 통하여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나의 약점을 스스로 알고 있다. 용기는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지모(智謀)가 없고 착한 일을 좋아는 하나 선택하여 할 줄을 모르고, 정에 끌려서는 의심도 아니 하고 두려움도 없이 곧장 행동해 버리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도 참으로 마음에 내키기만 하면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에 담겨 있어 개운치 않으면 기필코 그만 두지를 못 한다.(중략)
이러했기 때문에 무한히 착한 일만 좋아하다가 남의 욕만 혼자서 실컷 얻어먹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또한 운명일까. 성격 탓이겠으니 내 감히 또 운명이라고 말하랴.
노자(老子)의 말에 "여(與) 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 여! 사방을 두려워 하는 듯하여라"라는 말을 내가 보았다.
안타깝도다. 이 두마디의 말이 내 성격의 약점을 치유해 줄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깍는듯 할 터이니 몹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니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내가 이러한 의미를 해독해 낸 지가 6, 7년이나 된다. 당(堂)의 이름으로 하고 싶었지만 이윽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만두어 버렸었다. 초천(苕川)으로 돌아옴에 이르러서 비로소 써가지고 문미(門楣)에 붙여놓고 아울러 그 이름 붙인 이유를 기록해서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였다.
(배경설명)
정약용 선생이 형조참의(刑曹參議)로 있던 1799년(정조 23년)에는 선생에 대한 노론(老論)의 공격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 해는 정약용 선생을 비롯한 남인의 정치적 스승이었으며 정조의 충직한 신하였던 번암 채제공 선생이 돌아가신 해이기도 했는데, 이 무렵 정조는 정약용 선생을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으며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한 광경으로 선생이 판서(判書)가 되고 재상(宰相)이 되어 제2의 채제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론 벽파는 선생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는 1797년 <동부승지를 사직하는 상소>에서 천주교와의 관계를 모두 고백했고, 그 뒤 곡산부사로 외직(外職)에 나가 선정을 베풀고 돌아온 터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노론은 교활하게도 형 약전을 공격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는데, 가족이 물러나면 벼슬자리에 있는 다른 가족도 사직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분노했고 세상이 혐오스러웠다. 벼슬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선생은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관직을 그만 두기를 청하였다. 정조는 계속 만류하였지만 선생이 벼슬을 거부하자 할 수 없이 그해 7월 26일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1800년(정조 24년) 봄에 아버지 정재원이 낙향했던 것처럼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 마현으로 돌아와서 집의 문미(門楣)에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붙이고 은신하였다.
그해 6월 12일 달밤에 정조의 유시를 전하려 규장각 아전이 한서선(漢書選) 10질을 가지고 찾아왔다. "5질은 남겨서 가전(家傳)의 물건으로 삼도록 하고, 나머지 5질은 제목의 글씨를 써서 돌려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를 부르리라." 선생은 가슴이 벅차 눈물을 흘렸다. 노론 틈에 정조를 홀로 남겨놓고 온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은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6월 28일 정조는 노론에 둘러싸여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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