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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용 희망비 & 오성선 기념비. 용인시(龍仁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한희용 희망비 & 오성선 기념비. 용인시(龍仁市)

세계속으로 2019. 8. 20. 13:24

한희용 희망비 & 오성선 기념비. 용인시(龍仁市). 경기도(京畿道)


이땅에 야학이

영원히 없어지길

바라면서

한희용



오성선 기념비(吳性善 記念碑)

'농촌 개발의 선구자', '빈농구제의 아버지'로 불렸던 우서(又西) 오성선(吳性善, 1872-1950)의 공적비이다. 우서 오성선은 용인군 기흥면 서천리에서 태어나 1892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가 1905년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 개발과 계몽에 힘썼다. 1908년 7월 용인군과 수원군 지역민들과 농업연구회를 조직, 1909년 2월 용수농계(龍水農契)로 발전시켜 수백 명의 농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농사개량과 저리 융자를 통한 생활안정을 꾀했다. 이후 학계. 양계조합. 기업조합 등 다양한 산업계를 만들어 저축을 독려하고 농가수입 증진에 노력하였다. 특히 1928년 주민들과 자본금 20만원의 용수흥농주식회사(龍水興農株式會社)를 만들어 농촌개발과 빈농구제를 조직적으로 펼쳤다.

193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0주년 기념 '농촌사업 공로자'로 표창되었다. 이에 기흥면 주민들이 공적을 기려 1930년 5월 용인군 기흥읍 신갈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오성선은 각종 언론과 기관으로부터 '농촌갱생 지도자', '지방진흥 공로자'등의 표창을 받았다.)

기념비는 1992년 10월 1일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한희용 희망비

신갈야간학교 제2대 교장 한희용(1931-1996)이 이 땅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교육의 기회를 잃는 일이 없어서 야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좋은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며, 그 날까지 학습자의 편에 서는 '참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교사의 의지를 후면에 담아 교정에 세운 비이다. 신갈야간학교는 여러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근로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기 위해 지역의 대학생들이 뜻을 모아 1982년 2월 8일 신갈초등학교 교실 3개를 빌려 세운 무료학습기관으로 2019년 3월 현재에도 기흥구 신갈로 58번길 29-1번지에서 200여명의 학생들이 학습하고 있다. 신갈에서 태어난 한희용 교장은 1985년 11월 취임이후 1996년 돌아가실 때까지 천막교실이 화잴로 소실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초대 최명호 교장의 뜻을 이어 야학의 든든한 울타리로서 역할을 다하며 참사랑을 실천하였다.

용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