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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籠橋). 진천군(鎭川郡)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북도

농다리(籠橋). 진천군(鎭川郡)

세계속으로 2004. 10. 23. 00:09

농다리(籠橋). 진천군(鎭川郡). 충북(忠北)

 


농다리에 전해지는 다양한 전설

천년의 세월을 세금천 위로 곳곳이 버티어 온 '농다리'에는 아직도 많은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첫번째 전설, 농다기 (구전)

임 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기어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두번째 전설, 임연 오누이 힘내기 설화 (동국대학교 학술 조사팀 현지 연구 중에서)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 (임 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고 갔다가 오기로 하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딸은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간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왔다.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다.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다. 그리고 딸이 놓지 못한 나머지 한칸을 일반인이 놓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 간다. 농다리 건너 살고개에는 장수 발자국, 말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세번째, 울기도 하는 농다리 (제보자. 임상직 2003년 당시 80세)

농다리 근처의 동네 사람들은 듣지 못했으나 인근의 초평, 덕산지역 주민들은 큰 능구렁이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 이게 무슨 소리냐 물었더니 농다리의 울음소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 울음소리가 들린 해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이다.

 

네번째 전설, 재앙을 예고하는 농다리 (제보자, 안상춘 2003년 당시 93세)

예로부터 장마에 농다리 상판이 뜨면 나라에 큰 재앙이 일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죽거나 기상이변이 일어난다고 전해진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농다리는 고종 31년 동학혁명, 1979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를 예고했다고 한다.

<농다리 전시관 내용중에서>

 

 


 

 

 

 

 

 

 

 

 

 

 

 

 

 

 

 

 

 


한국의 옛다리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농다리

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진천의 농다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1976년 12월 20일 지방유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된 '농다리'는 진천의 명소이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이 돌다리는 그 모습이 마치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것 같은데, 제법 장대한 규모에도 압도되지만 장마 때면 다리 위로 물이 넘어가는 '수월교'라는 점에서 그 슬기로움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해마다 한 차례씩 물이 넘어가는 바람에 다리에 놓인 물들이 덜컹거린다.

그래서 '농다리'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이것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다리가 물살에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극복하고 개조했던 옛사람의 마음을 배운다.

 

현재 농다리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상판 유실과 교각 파손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지만 유례없는 석축 방식을 가진 농다리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군민들이 힘쓰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로 천년 세월을 넉넉히 이겨낸 농다리... 이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농다리 보존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농다리 전시관 내용>

 

 

농다리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

천년의 신비 '농다리'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이 다리의 교각에 사용된 석재는 대체로 30*40cm 의 자연석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렸으며, 동양철학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하여 28칸의 교각을 만들었다. 그 위에 길이 170cm 너비 80cm  두께 20cm 의 장대석 1개 또는 길이 130cm  너비 60cm 두께 16cm 의 장대석 2개를 나란히 얹어 만들었다. 총 길이 94m 폭 3.6m  두께 1.2m 이며 교각과 교각 사이는 0.8m 정도 떨어져 있다.

 

'농교'로도 불리는 농다리는 구조적으로는 징검다리와 형교의 중간 형태로서 물의 양이 늘면 잠수교의 기능도 한다. 사력암질의 붉은 색 돌을 그대로 쌓았는데, 돌의 뿌리가 서로 엇물려지도록 쌓고 틈새는 작은 돌로 메웠다. 자연석을 성글게 쌓았기 때문에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 당기면 돌아간다고 한다. 농다리는 교각의 양쪽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구조적으로 흐르는 물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석회를 바르지 않고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지면 물이 다리위로 넘어가도록 되어 있으나 유실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것을 보면 그 축조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 토목공학적인 측면에서도 그 유례가 드문 특이한 돌다리로 알려져 있다.

 

 

 

농다리의 구성도

농다리는 들여쌓기와 엇물려 쌓기 방식, 유선형의 독특한 구조로 물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견고함을 갖고 있다.

석재 : 대체로 30*40 cm 의 자연석

석축 방식 :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모습

구조 : 총 길이 94 m 폴 3.6m 두께 1.2 m

          24 개의 교각, 교각 폭 0.8m  정도

장대석 (길이 170cm 너비 80cm 두께 20cm)

장대석 (길이 130cm 너비 60cm 두께 16cm)

서로 엇물려 쌓은 돌뿌리

작은 돌로 메운 틈새

교각 양쪽 유선형 구조 : 흐르는 물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