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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고성군(高城郡) 본문

나라안 나들이/강원도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고성군(高城郡)

세계속으로 2012. 4. 15. 16:02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고성군(高城郡). 강원도(江原道 )

 

화진포의 城 (김일성 별장)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H. Weber 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으로 "화진포의 성 ()"으로 불리워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 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 화진포의 성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망명 건축가 베버가 건축하였으며, 6.25 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소재지: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본 별장은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지역으로써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하였다.

1948년 부터 6.25 남침이전까지는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하계휴양을 했던 곳으로써 당시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64년 육군에서 훼손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하였으며, 1995년 육군 복지단에서 개. 보수 하여 장병휴양시설로 운영하여 오다가 1999년 7월 육군에서 기존의 건물을 용도 변경, 개수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 안내문에서 -

 

 

 

 

 

 

 

 

 

 

 

 

소련군 제 25군 정치사령관 리베데 소장 아들과 함께 찍은 김정일(당시 6세 미만)

 


 

화진포 설화

먼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로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며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딱 멈춰서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 왜 자꾸 나를 쫓아 오시오?" 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을 하며 또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 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그러자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은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가 돼 버렸다.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라는 이름도 바로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37년 일본 군부는 비행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원산의 휴양촌을 강제 철거키로 결정하였다. 대신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약 1백마일 떨어진 이상적인 장소를 선교사들의 휴양지로 제공하였다.

선교사로서 당시 휴양지 이전에 대한 실행위원이었던 셔우드 홀 (Sherwood Hall) 박사는 독일에서 히틀러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베버(H. Weber) 에게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면한 암벽위에 짓게 하였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지은 원통형 2층 건물을 현위치에 지었는데 마치 유럽의 작은 성()을 닮은 모습의 멋진 건축물이었다.

 

셔우드 홀 (Sherwood Hall. 1893-1991)

셔우드 홀은 평양 감리교 선교 개척자인 캐나다인 아버지 윌리암 제이미스 홀 (William James Hall)과 조선에서 병원, 학교, 교회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Rosetta Sherwood) 사이에서 태어났다.

셔우드 홀은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함께 공부한 미국인 의사 메리안 바텀리(Marian Bottomly)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의료 선교 사업을 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1932년에는 결핵치료를 위해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씨을 발행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제시대에는 간첩으로 몰려 형무소 생활과 한국으로부터의 강제 추방을 당하는 등 심한 핍박을 받기도 했다.

조선 사람의 질병 퇴치를 위해 온 가족과 함께 헌신한 선교사이며, 파란 눈의 조선인인 셔우드 홀은 그의 부인 그리고, 부모와 함께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화진포의 아름다운 경치

화진포(花津浦)의 경치는 동해와 인접하여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호수 주위에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졌으며 송림과 어우러진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주변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이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이 안보전시관으로 남아있다

특히 모래빛이 하얗고 모나즈(Monaz) 성분이 많아 모래를 밟으면 감촉이 부드럽다. 또한 개미 등 곤충류(昆蟲類)가 살지 않으며 맑은 동해의 해수가 화진포 담수와 교차해 해수욕장으로도 최적지이다. 호수주위에 경치가 좋아 죽정(竹亭), 모연(暮煙), 풍암(), 귀범(歸帆), 장평(), 낙안(落雁), 가평(加平), 야종()을 화진팔경이라고 한다.

 

화진포 해양 박물관

동해안 최초, 최대규모의 화진포해양박물관은 기존의 패류박물관 옆에 배를 닮은 건물이 세워지면서 패류와 각종 어류, 해저터널 수족관을 꾸며 화진포해양박물관으로 거듭 태어났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쿠아리움 어류연구팀의 지원을 받아 꾸며진 화진포 해양박물관은 패류 박물관과 같은 크기인 990여 m2 규모로 동해안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어류박물관에는 산호섬과 각종 열대어, 동해 물고기 전시실로 꾸며져 어류 125종 2,400 여 마리가 서식환경에 맞게 전시되어 있으며 180도 머리위를 휘감는 해저터널은 해양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신비와 감동을 전해준다.

 

가을동화 촬영지

2000년 가을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장소가 바로 이곳 화진포해변이다. 화진포 호수의 경우, 가을이면 호수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갈대밭과 호수를 찾아드는 철새들, 하늘대는 코스모스가 한데 어우러져 전형적인 가을 풍경을 자아낸다.

수만년 동안 조개 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 해변을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하하며 금구도의 절경과 더불어 해수욕장으로서는 최적지로 관광객과 피서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수정 벽난로

벽난로에는 동굴 속에서 채취해 온 수정암석이 쌓여 있었다. 그는 벽난로가 얼마나 불을 잘 빨아들이는지 보여주려고 불을 붙였다. 춤추는 듯한 불꽃은 벽난로에 붙어 있는 수정에 현란하게 반사되었다

"닥터 홀"의 자서전 <조선회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