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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취각(璇聚閣). 광한루원(廣寒樓苑). 남원시(南原市) 본문
선취각(璇聚閣). 광한루원(廣寒樓苑). 남원시(南原市). 전북(全北)
선취각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고전 문학인 춘향전과 전통문화예술의 본향()인 남원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사진과 설명문이 전시되어 있다.
영상화면과 터치 스크린(Touch screen) 으로 국립 공원 제 1호인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비경과 남원의 명승지, 축제 행사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축소 지형 모형도는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이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길 찾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 가락의 멋진 풍류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각종 국악기도 있다. 선취각은 구슬처럼 귀중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한 집이라는 뜻으로, 한글학자 우란 한갑수가 이름을 짓고, 현판의 글씨는 서예가 운산 양택술이 썼다.
- 안내문에서 -
민족혼이 담겨 있는 춘향전의 이해
춘향전의 문학적 의의
춘향전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소설이다.
대부분의 고전소설과 달리 판소리로 불리워 지다가 이야기로서 얼개를 갖추어 소설로 정착되었다.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수많은 이본과 근원설화가 남아 있으며 판소리와 창극, 소설과 연극영화로 꾸며져 유사이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개의 고전소설이 권선징악이라는 고정된 틀에 얽매여 있는 것과 달리 춘향전은 보다 복잡하고 사실적인 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이나 춘향의 입을 통하여 대변되는 사회상 내지 저항정신은 춘향전이 문학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춘향전 근원설화
춘향전의 바탕이 되고 있는 근원설화는 그 동안 구비문학의 형태로 전해져 온 것들이 무려 백여종에 이르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열녀설화, 암행어사설화, 신원설와, 염정설화 등과 그 외에 남원고사가 있는데 이러한 설화들이 소설 춘향전의 근간이 된 것이다.
판소리 춘향가
판소리는 조선조 영조 이후에 형성된 것이며 처음에는 열두마당이 불려졌으나 현재에는 춘향가. 흥부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마당만 전해지고 있다.
춘향가는 18세기 영조때에 유진한이 쓴 만화집에 최초로 사설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영조때부터 판소리로 불려졌던 것이며, 이 춘향가에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있으며, 당시대의 계급사회와 사회상이 깊게 서술되어 있어서 현대소설 못지 않게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한국 최고의 정원 광한루원
광한루원 (廣寒樓苑 : 명승 제 33호)
광한루원은 조선시대 조경문화인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신선사상 (神仙思想)에 기본을 두고 꾸며진 정원이다. 정원내에 우주를 본따서 은하수 상징의 호수(湖水)와 견우직녀의 전설을 간직한 오작교(烏鵲橋), 그리고 신화속의 삼신산(三神山)인 봉래섬(蓬萊:금강산), 방장섬(方丈: 지리산), 영주섬(瀛州:한라산)을 호수안에 만들었으니 이 루원에서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싹텄고 또한 춘향전의 배경이 되었다.
광한루 (廣寒樓 : 보물 제 281호)
고전소설 춘향전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소가 된 광한루는 조선조 태종때 남원으로 유배되어 내려온 황희 정승이 그의 선조 황감평이 지은 일재라는 서실을 헐고 그 터에다가 1419년 새로이 누각을 세우고 광통루라 하였다.
훗날 세종 26년(1444) 전라관찰사 정인지가 이곳 광통루에서 노닐다가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흡사하다고 감탄하면서부터 광한루가 부르게 되었다.
이 누각이 정유재란때 화재로 소실되어 오래 세월 황폐되었다가 인조 4년 (1626) 남원 부사 신감에 의해 오늘과 같은 누각으로 복원된 것이다.
완월정 (玩月亭)
완월(玩月)이란 세인들이 달을 벗삼는 다는 말이며, 1971년 광한루원을 확장하면서 이 수중에 누각을 세우고, 천상의 달과 수중에 담긴 달을 그려보는 정자로서 해마다 남원향토문화제인 춘향제를 펼치는 무대이기도 하다.
청허부(淸虛府)
광한루는 일찍이 천체우주(天體,宇宙)를 지상에 옮겨놓은 작은 우주로서 천상의 달나라에는 옥경이 있고,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광한전에 청허부가 있어 이 월궁을 상징하여 광한루원 정문을 청허부라고 했다.
호수(湖水)와 오작교(烏鵲橋), 삼신산 (三神山)
광한루는 일찍이 송강 정철이 천체우주를 상징한 신선경으로 경내를 조성했는데, 은하수인 호수와 견우직녀의 전설로 오작교를, 그리고 신화적 삼신산으로 신선이 살았으며 불사약이 있다는 봉래섬과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사약을 구하러 보냈다는 영주섬, 그리고 선경의 방장섬을 만들어 설화적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춘향의 자취 광한루원
춘향사 (春香祠)
이 사당은 남원의 토반(土班)인 이 현순, 강봉기, 이백삼, 최봉선 등이 춘향의 지고지순한 일편담심 수절정신을 황토혼으로 기리고자 춘향사당을 건립키로 하고 남원지역은 물론 평양, 진주, 동래 등지의 유명한 권번(券番)을 찾아다니며 성금을 모아 1931년 사당을 건립하고 그해 오월 단오날 첫 향불을 올렸으니 그것이 제 1회 춘향제인 것이다.
사당 안의 영정은 처음 강주수(姜周秀) 화백이 그렸으나 6.25 동란 때 훼손되어 다시 김은호 화백이 그려 현재 사당 안에 봉안되어 남원인의 정서와 한국여인의 부덕을 기리고 있다.
춘향관(春香館)
이 춘향관은 춘향전을 한눈에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아홉 폭의 유화와 글로 요약하여 걸었으며, 당시대의 유품과 장신구들을 진열하여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월매집 (月梅집)
월매는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이의 어머니이며, 월매집은 이도령과 성춘향이가 백년가약을 맺은 유서 깊은 곳이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배경이 된 이 월매집은 월매가 거처하는 부용당을 지어 조선시대 전통 가옥으로 꾸며 놓았다.
부사(府使) 성안의(成安義) 비 (碑)
성안의는 선조 40년 (1607)부터 광해군 3년 (1611) 무렵 남원부사로 재임했으며, 춘향전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부사이다.
춘향전 근원설화(根源說話) 중에 성이성 (成以性)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성이성은 성안의 부사의 아들이며, 그가 남원에 암행어사로 내려와 부사의 생일연에서 <金樽美酒千人血 ..)의 시를 읇고 암행어상 출두를 하였다는 내용이 성이성의 행록인 계서잡록(溪西雜錄)에 실여 있어서 춘향전이 실존 소설이라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비(碑) 이다.
암행어사 출두길
■ 첫째날 : 전하께서 친히 불러 전라도 어사로 임명,
부모님께 하직인사 후 출발
과천에서 점심
수원에서 숙박
■ 2일째 : 진위에서 점심
성환에서 숙박
■ 3일째 : 천안에서 점심
김제역, 말을 갈아타다.
원터. 숙박
■ 4일째 : 금영에서 점심
경천에서 숙박
■ 5일째 " 여산읍에서 자고난 뒤
서리를 불러 남원에서 만나기로 약속
■ 6일째 : 삼례 숙박
임실 국화뜰, 농부로부터 원성을 들음
방자 상봉
박석고개, 휴식
■ 7일째 : 남원 고을 당도
춘향과 옥중 상봉
■ 8일째 : 어사출두.
남원부도
남원의 민속축제
춘향제(春香祭)
우리 민족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소설 춘향전에 바탕을 둔 춘향제는 춘향의 지고지순한 수절정신을 한국여인의 부덕으로 기리고자 1931년 사당을 짓고, 그해 단오날 첫 향불을 올리면서 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고장의 향토 민속축제로 이어오고 있다.
흥부제(興夫祭)
흥부전은 권선징악과 형제우애 그리고 사필귀정의 인류사상을 다룬 고전소설로써 그 배경이 남원시 인월면과 아영면이라는 사실이 고증되어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3년부터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향토민속문화재로 흥부제를 펼치고 있다.
고로쇠 약수제 (산내면 반선리)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고로쇠나무에서 매년 경칩과 우수사이에 나오는 수액으로 부인병과 위장병, 그리고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매년 경칩을 전후로 고로쇠 약수제을 열어 시음회와 산신제 등을 지낸다.
바래봉 철쭉제 (운봉읍 바래봉)
운봉목장 넓은 평원을 굽어보는 바래봉에는 수령 100여년의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철쭉이 만개한 시기를 택하여 철쭉제를 여는데, 행글라이딩 대회, 사진찍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산 능선 철쭉동산에서 열린다.
삼동굿놀이 (보절면 괴양리)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양촌, 음촌, 개신 3개 마을에서 이곳 토바이들이 농악과 어울려 매년 음려 7월 보름 백중날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며, 이 마을에서 500여년도안 민속놀이로 이어왔으며, 1982년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황산대첩 축제
고려 우왕 6년 (1380)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의 기상과 호국의 정신을 높이 기리고자 운봉애향회 주최로 1986년부터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징 꾕과리 소금 대금 거문고 가야금 사물놀이북
징 소리북 장구
남원과 국악
국악의 성지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익히며 신곡 30곡을 작곡하여 그 금도()를 이 고장 출신 속명득()에게 이어 주었고, 속명득()은 귀금()에게, 귀금은 안장(). 청장()에게, 그리고 안장은 그의 아들 극종()에게 전수하여 극종이 새로이 7곡을 지어 세상에 거문고를 넓혔다는 기록이 있다.
운상원()은 고장 운봉() 고을로 이때부터 음악예술의 발상지가 되어 조선조 숙종 때 송흥록() 명창이 이곳 운봉에서 태어나 판소리 동편제의 바탕을 이루면서 남원이 국악의 성지가 되었다.
그뒤를 이어 동생 송광록과 그의 아들 송우룡 그리고 송우룡의 아들 송만갑이 삼대에 걸쳐 동편제 소리의 가문을 이어왔고 18세기 조선조 정조 때 국창 권삼득() 명창이 남원의 지리산 구룡계곡() 용호폭포()에서 소리공부를 하여 국창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철종 무렵 이 고장 운봉에 장재백() 명창과 줄타기 명수 장재봉() 형제가 태어났고, 철종때에 유성준() 명창이 남원에 살면서 김정문() 명창과 여류명창 이화중선()을, 김정문은 여류명창 박초월()과 인간문화재 강도근() 명창을 길러냈다.
또한 고종 때에 가야금의 명인 장행진()과 대금의 명인 강백천()도 이 고장 출신이며, 현재 국악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안숙선() 명창과 강정숙(), 전인삼() 명창도 이 고장 남원출신으로 역대 기라성 같은 국악인이 배출되어 판소리 동편제 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짐으로 해서 국악의 고장이라 일컬어진 것이다.
사랑, 사랑, 사랑의 남원
남원의 역사
남원은 삼한시대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온조왕 때 고룡()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신문왕 5년 (685)에 남원소경()을 두어 이때부터 남원이라는 지명을 쓰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조에는 부()와 도호부()를 설치하여 전라도 일대를 다스리는 정치. 경제. 문화지방행정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남원의 문화유산
만인의 총
정유년(1597) 풍신수길이 왜장 소서행장과 가등청정을 선봉으로 11만 대군으로 우리 나라를 침노하여 그 중 5만 6천이 남원성으로 쳐들어 왔으니,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당시 남원성의 민. 관. 군 일만여 충절이 왜구와 싸우다가 성돌을 베개삼고 옥쇄하여 그 호국영령을 모신 곳이 만인의총이다.
한일합방이후 일제에 의해 많은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1964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성역화 했으며, 매년 9월 26일 순의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만복사지
시내에서 서쪽으로 순창가는 길목에 자리한 만복사는 신라말 풍수지리설의 비조인 도선이 지었다는 설과 고려 문종때 지었다는 설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불타버리고, 지금은 5층석탑(보물 제 30호), 만복사지 석좌(보물 제 31호), 석불입상(보물 제 43호), 당간지주(보물 제 32호), 그리고 석인상이 남아 있어 당대의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에서 "만복사 저포기"의 배경으로 유서 깊은 곳이다.
교룡산성
남원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로서 많은 성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이다. 축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남원의 서쪽 해발 518미터 교룡산 중턱에 축조된 이 성은 3 Km의 성곽과 4대문, 군창, 마장터, 샘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과 동서간 남벽이 남아있다.
성내에는 호국사찰 선국사가 있으며, 교룡산을 중심으로 국민관광지(9,680평)가 조성되어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원성
축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통일신라 신문왕 11년(691)으로 추정되며,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이 왜구에 함락되면서 퇴락 후, 숙종 18년(1692)에 재축성 하였으나 동학농민항쟁으로 동문과 남문이 소실되고,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로 서문과 북문이 헐리어 지금은 북벽 일부를 복원하였다.
노래탑 "오늘이 오소서"
이 노래는 고려말부터 조선조 중엽까지 우리고장 조상들이 즐겨불렀던 향가로서 1610년 남원에 살았던 양덕수씨가 채보하여 <양금신보>와 <청구영언>에 실어 전해왔는데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남원 도공들이 향수를 달래는 망향의 노래로 불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이 향가의 역사적, 향토문화적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건립한 노래탑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지리산
소백산맥 끝자락에 우뚝 솟은 영산 지리산은 방장산. 두류산, 남악산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해발 1,915m (천왕봉), 면적 485 Km2로 3개도 (전북. 전남. 경남), 7개시군(남원,장수.곡성.구례,함양,산청.하동)에 결쳐 있으며, 두루 8백리의 지리산은 예로부터 우리민족 무속신앙의 발원지로서 신성한 명산이다.
뱀사골
장엄한 지리산 천만 계곡의 한 자락인 이 곳은 옛날 송림사()란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며, 이 계곡에서 용으로 승천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이무기의 전설에서 이름이 남겨진 계곡이다.
반야봉 아래로 기암절벽과 맑은 물, 그리고 철따라 천의 운치를 자아내는 절경이다.
정령치
해발 1,172m 의 지리산 준령으로 삼한시대 마한의 도읍지였다고 전해온 달궁()을 지키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성을 쌓고 순라로를 지켰다는 전설의 지리산 한자락이다.
전국에서 행, 패러글라이딩 최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넓은 주차장과 휴게소가 갖추어져 있다.
지리산 전적기념관과 충혼탑 (지리산 뱀사골)
민족의 비극 여순 사건과 6.25 당시 지리산으로 숨어든 공비와 빨치산을 소탕했던 당시 지리산지구 토벌작전 실상을 후세의 역사적 교육장으로 남기기 위해 1979년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전적자료 400여점을 전시했다. 또한 그 전투에서 조국을 위해 젊은 혼을 불사를 6,333주의 영현을 추모하는 충혼탑을 세웠다.
지리산 찬시비
남원 출신으로 조선조 성종 때 문신이며 학자이신 눌재() 양성지()의 지리산 예찬 시비가 전적기념관 공원내에 건립되었다.
실상사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흥척국사가 창건한 이 실상사는 신라 선불교의 구산선종() 중에서 최초로 개창된 선종사찰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고종 21년 (1884)에 지었으며, 우리 나라 사찰중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 (국보 1점, 보물 11점, 민속자료 1점, 지방문화재 3점, 사적 1점)을 보유하고 있다.
황산대첩비지
고려말 우왕 6년 왜구가 아지발도을 선봉장으로 우리고장을 침노하여 살인. 방화. 약탈 등 노략질을 일삼자 이때 이성계 장군이 토벌장수로 출정하여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괴멸하고 대 승첩을 올려 선조 10년(1577)에 대첩비를 건립하였다.
당시 왜장 아지발도와 왜구들이 흘렸던 피가 바위에 물들어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피바위라 전하고 있다.
남원 고을 특산품
남원목기와 상 ()
통일신라 고찰 실상사에서는 지리산 서부지역에서 자란 단단하고 고운결을 이용한 임산자원으로 바라를 만들면서 발달한 목기제조 기술은 조선조 500여년동안 왕실 진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목기와 상(밥상. 교자상. 찻상)은 전국수요의 대부분을 남원에서 공급하고 있다.
한지()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는 닥나무를 이용하여 만든 한지는 고려조와 조선조까지 왕실진상품으로 높이 평가되었던 측산품이다. 지금도 수작업으로 생산하는 전통한지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지로 수출이 활발하다.
부채
조산동에서 만들어진 부채는 중국과 일본까지 수출되어 1925년도에슨 조산리 부채산업조합이 설립된 역사를 갖고 있다.
주로 태극선과 방구부채를 생산하며, 품질이 우수해 전국 제일로 꼽고 있다.
무공해 질그릇
정유재란시 남원의 도공들이 왜구에 의해 일본으로 끌겨간 역사는 이 고을 도예산업이 얼마나 발달하였는지 눈 여겨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순수한 황토와 천연유약을 사용하여 제작하므로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이 제맛을 내고 신선도를 유지시켜 준다.
식도()
옛날부터 남원식도는 날이 예리하고 쉽게 망가지지 않아 주부들로부터 인기상품으로 자리잡아 수요가 늘고 있다.
1922년 6월 조선부업공업 공진회에서 남원식칼이 금상을 받은 뒤 더욱 유명해졌으며, 식칼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제작사가 여러 곳 있다.
천연 무공해 농산물
비옥한 금지평야에서 시설하우스로 재배되는 딸기는 당도가 높아 유명하며, 황금배, 토종꿀, 더덕즙, 춘향미, 복숭아, 지리산 산채, 송이버섯 등이 각광 받고 있다.
추어탕과 숙회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질 좋은 미꾸라지를 이용하여 지리산 산채를 가미한 요리법이 일찍부터 발달 하였으며, 단백질, 칼슘, 비타민이 풍부하여 강장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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