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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산 와우정사 안내문. 용인시(龍仁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연화산 와우정사 안내문. 용인시(龍仁市)

세계속으로 2013. 4. 28. 13:53

연화산 와우정사 안내문. 용인시(龍仁市). 경기도(京畿道)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 년전에 신라인들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불력(佛力)으로서 창건한 사찰이 황룡사(皇龍寺)입니다.

호국불교 정신을 이어 고려시대에 몽고군 20만 대군과 적장 살레타이가 이곳 용인 처인성에 쳐들어오니 김윤휴 대사님이 농민들과 함께 스님이지만 호국불교 정신으로 칼과 활을 들고 싸워서 적장 살레타이를 사살하여 몽고군을 몰아내었습니다.

조선조시대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께서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33인으로서 만해(萬海) 한용운 대사님과 용성 백상규 대사님께서 독립을 위하여 싸우셨습니다.

우리 7천만 민족의 염원인 남북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도량으로 대가람을 최초로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용인시 처인구는 우리 민족의 호국불교 정신의 성지입니다. 그러므로 온 겨레의 숙원인 남북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라의 호국가람인 황룡사(皇龍寺) 의 종과 같이 조성된 국내 최대의 황동범종 "통일의 종"과 화랑도가 추구한 미륵보살님을 청동으로 조성한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인도네시아에서 인도스님이 보내주신 통 향나무로 조성한 해탈(解脫) 번뇌를 소멸하신 부처님 "누워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 황동 8만근으로서 10년이란 세월동안 조성한 장육종상 5존불의 대자대비한 모습으로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우리나라 불교도를 위해 스리랑카의 고승일행이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이 곳에 봉안되어 있어 세계적인 불교성지로서의 면모와 품격을 말해줍니다. 이어 호국정신의 동참으로 창건된 대웅보전(大雄寶殿), 21세기에 완성될 높이 약 250척의 최대의 석가모니 부처님 입상이 조성 중이며 이외에도 전국사찰의 큰 스님들과 신도들이 가져온 돌로, 한층 한층 불심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통일의 탑"과 "금동 53존불" "아미타불 입상" 약사여래불" "5백 나한님"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 등 가히 <부처님의 동산>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이 땅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길이 남겨 줄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

신라의 통일염원, 고구려의 호국염원, 조선의 구국염원으로 그 맥을 잇게 되러 대성지(聖地) 와우정사 (臥牛精舍)

국내 사찰중에서 최대로 손꼽히는 수만여평의 터전에 이 시대의 자랑이자 호국의 기운서린 연화산 와우정사(臥牛精舍)는 세계불교사에 찬란히 빛날 명찰(名刹)로 우뚝 솟으리니...

- 나 무 석 가 모 니 불 -

남북평화통일 기원도량 연화산 와우정사

- 안내문에서 -

 

 

 

 

 

태국

태국은 동남 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인도차이나, 미얀마 그리고 중국 남부지역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안선이 2,614 km 에 달하고 동쪽으로는 태국만, 서쪽으로는 안다만 (Andaman) 해을 끼고 있다

 

총면적은 약 513,115 평방 킬로미터로 프랑스와 비슷하며 남한 면적의 5배에 달한다

국토의 28%가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41% 가량은 경작지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대략 6천 1백만명 정도로, 타이,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그 밖에 말레이, 라오스, 인디언 그리고 버마인들이 그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공식어는 태국어지만 상업 영어도 통상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태국의 국교는 상좌부불교 (Theravada Buddhism) 또는 남방불교로,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태국지역 사람들은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타이 Thai" 라는 국명은 "자유"을 의미하는 태국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제껏 외세의 지배를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태국은 국왕을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태국과 한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의 옛 이름인 싸얌 왕조는 1391년과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으나, 단절된 양국관계는 1950년 태국정부가 3,650 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전쟁(6.25)에 파견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태국군대는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나머지는 한국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고 젊은 세대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기도 했다.

 

태국은 한국과 오랜 우방 관계를 지속해 온 국가로 1949년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 한국 전쟁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1972년까지 한국에 주둔하기도 했다.

1959년에 정식으로 양국간에 외교관계가 성립되었고, 1981년 양국간 사증면제협정 체결로 한국인은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비자 없이 90일간 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 안내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