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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 효종대왕릉). 여주시(驪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영릉(寧陵. 효종대왕릉). 여주시(驪州市)

세계속으로 2016. 3. 10. 17:01

영릉(寧陵. 효종대왕릉). 여주시(驪州市). 경기도(京畿道)

 

 

 1. 효종대왕릉 (孝宗大王陵)

 2. 인선왕후릉 (仁宣王后陵)

 3. 정자각 (丁字閣)

 4. 수라간 (水刺間)

 5. 비각 (碑閣)

 6. 수복방 (守僕房)

 7. 홍살문 (紅箭門)

 8. 재실 (齋室)

 9. 어정

10. 연지


영릉(寧陵)은 효종대왕(孝宗大王, 1619~1659)과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능이다

효종은 1619년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1645년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되었다. 이후 1649년 조선조(朝鮮朝) 제 17대 왕으로 즉위(卽位)하여 1659년까지 10년간 나라를 다스리시다가 41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효종은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서 8년간 고초을 겪었는데, 당시 조선 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을 수 없는 민족의 한으로 생각했다.

왕위에 오른 후 효종은 이 수치를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여 대내적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고 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대외적으로 북벌(北伐)계획을 위하여 성채(城砦)를 쌓는 등 국방력을 강화하였다.

이즈음 러시아가 시베리아 쪽으로 남진하자 청나라는 조선에 원병(援兵)을 청하였다.

이에 왕은 우리 군대의 능력을 시험하고 청나라의 군사 정세를 탐지하고자 두 차례에 걸쳐 나선정벌(羅禪征伐) 원정군을 보내어 쑹화강(松花江), 헤이릉강(黑龍江)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러나 불벌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갑자기 승하하여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

영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지금의 구리시)의 건원릉(健元陵) 서쪽에 있었던 것을 현종(顯宗) 14년 (1673)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 매표소 


가로등 


 

 

 

 

 

 

                                   ▲ 수라간     ▲ 홍살문    ▲ 참도                         ▲ 수복방   

                                                                                               ▲ 정자각            ▲ 비각


 

 

배위(拜位)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절을 4배함. '판위(板位)'라고도 함.

 

                       ▲ 효종대왕릉                                       ▲ 인선왕후릉

동원상하릉

 

          ▲ 효종대왕릉                                                  ▲ 인선왕후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