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
박달재. 제천시(堤川市) 본문
박달재. 제천시(堤川市). 충북(忠北)
박달재 전설 (Legend of Bakdaljae)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산을 박달재라 한다.
박달재의 원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졌고 이틑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둥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 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쫒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 안내문에서 -
울고넘는 박달재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흥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나
왕거미 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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