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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려 장군 유적지. 박달재. 제천시(堤川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북도

김취려 장군 유적지. 박달재. 제천시(堤川市)

세계속으로 2012. 5. 6. 19:30

김취려 장군 유적지. 박달재. 제천시(堤川市). 충북(忠北)

 

김취려 장군의 제천 박달령 전투

포천에서 원주를 함락한 거란 10만대군은 충주와 제천을 침공하려고 하였다. 김취려 장군은 전군병마사로서 맥곡 보리실(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서 중군병마사 최원세장군과 협공하여 적 300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다. 김취려 장군은 제천방향으로 달아나는 적을 계속 추격하고 산골짜기를 수색하면서 승리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박달현에 이르렀다.

1217년 7월 김취려 장군은 거란군과의 전투를 예상하고 박달고개를 먼저 차지하였다. 박달고개는 경사가 가팔라서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조건을 잘 갖추고 있었다. 병력면에서 불리했던 김취려 장군은 대규모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박달재를 미리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취려 장군은 신덕위. 이극인 장군을 진중의 왼쪽에, 최준문, 주공예 장군을 진중의 오른쪽에 배치하여 거란군을 방어하게 하였다.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고개위로 올라가 진을 쳤다.

동틀 무렵에 예측대로 거란군이 박달고개의 좌우 방향으로 올라왔다. 고개마루에서 미리 포진하고 있던 김취려 장군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북을 울리면서 공격명령을 내렸다. 잠복하고 있었던 고려의 병사들은 유리한 고지에서 적들을 향하여 일제히 화살을 쏘고 결사적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대패한 거란군은 평창을 거쳐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서 원산, 흥남을 거쳐 여진 땅으로 도주하였다. 박달령 전투의 승리로 전쟁의 피해가 제천이남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 안내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