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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靈山殿). 약사전(藥師殿). 삼층석탑. 통도사(通度寺). 양산시(梁山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상남도

영산전(靈山殿). 약사전(藥師殿). 삼층석탑. 통도사(通度寺). 양산시(梁山市)

세계속으로 2013. 1. 13. 12:41

영산전(靈山殿). 약사전(藥師殿). 삼층석탑.

통도사(通度寺). 양산시(梁山市). 경남(慶南)

 

영산전(靈山殿)

경남 유형문화재 제 203호

 

영산전은 하노전(下爐殿)의 중심 건물이다. 남향한 영산전의 전방 좌우에는극락전과 약사전이 동서에 놓여 있고, 그 중앙 지점에는 신라 말기의 3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현 위치에서 동북쪽 약 1.5m 지점에 경사진 채 있었으나 최근에 현 장소로 이동하여 복원되었다.

 

영산전의 초창 연대는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 30년(1704) 송곡대사(松谷大師)에 의하여 중건 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記)>에 따르면, 1713년 봄 영산전과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1714년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는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양식이며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 특히 내부 벽화의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관음(楊柳觀音), 나한상, 여러 가지 경설(經說)의 내용들이 품격 높은 수작(秀作)으로 국내에서 보기드문 희귀한 작품이다. 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였으며 탑신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분반좌(分半座)하는 『법화경』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였다. 탑의 주변에는 보살상과 제자상이 시립(侍立)해 있고 탑문(塔門)이 열린 내부로 2여래(二如來)가 병좌(竝坐)한 모습이며 탑 둘레는 온통 영락과 풍경장엄 속에서 하늘에는 오색(五色) 구름이 휘날리고 있다. 그림은 애석하게도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상태는 좋은 편이다. 

 

그외에도 내부 불벽(佛壁)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든지 나한상과 함께 산수화풍의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벽면의 요소 요소에 적당한 구도를 잡아 여러 가지 경설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외부 벽면에 남아 있는 노승(老僧) 공양도(供養圖)의 경우 많이 훼손되었으나 그림은 품격이 높은 수작이다.

 

건물의 내부 천전에는 우물천정을 조성하여 고식(古式)의 연화문(蓮花紋) 또는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단청하였다. 대들보에 그린 황룡, 청룡의 그림이 매우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그 옆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팔상영화를 안치하였다. 팔상도라고도 하는 이 그림은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가지 중요 사실들로 정리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외에도 영산전에는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는 현재 48점이 그려져 있는데, 이 가운데 석가모니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6점이고, 전법제자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2점이 있어 주목된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현존 하는 팔상도중 최고의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다른 팔상도나, 대광명전 삼신탱을 조성한 임한의 영산회상도가 있었으나, 현재 두 불화는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팔상도의 조성은 영조 51년(1775)으로 연대뿐만 아니라 당시 불화(佛畵)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형그림이다. 

- 출처 : 통도사

 

 


 

 

삼층석탑

경남 유형문화재 제 18호

 

영산전 앞에 있는 탑은 2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탑 앞의 배례석과 함께 통도사의 석조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배례석은 직사각형으로 연화무늬를 조식하였는데 음각된 명문(銘文)에 의하면 1085년(선종 2)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탑은 전체 높이가 약 3.5m이고 구성은 4장의 큰 장대석(長臺石)을 다듬어 지대석(地臺石)을 설치하고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인 이중 기단을 형성하였다. 상층 기단에는 모서리에 각각 우주(隅柱)를 새겨넣고 그 사이에 탱주(撑柱)를 두었으며, 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3개씩 조각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석탑의 장식적 기능을 강조하던 통일신라시대 말기, 즉 9세기 이후의 특징이다.

각 탑신에는 우주만 새겼을 뿐 별다른 조각은 없으며 옥개석(屋蓋石)은 옥개받침을 4단으로 축소시키고 있어 역시 시대성을 반영한다. 상륜부는 3층 옥개석 위에 2단 받침형의 갑석을 가지는 노반(路盤)을 설치하고 그 위에 복발(覆鉢)과 보개(寶蓋)가 남아 있는데 노반 이상은 원래 이 탑의 부재였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석탑 기단에서 불상이 발견된 예로 경주의 미탄사지(味呑寺址) 삼층석탑과 경주 남산의 천룡사지 삼층석탑(天龍寺址三層石塔:보물 1188), 그리고 목탑의 경우 부여 군수리사지(夫餘軍守里寺址:사적 44)의 목탑지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예는 지진구(地鎭具), 즉 탑을 건립하기 전에 땅의 힘을 누르기 위해 매납된 유물이거나, 혹은 사리를 봉안하는 탑의 건립과정에서 소요되는 여러 단계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건탑의식(建塔儀式)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1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출처 : 통도사 -

 

 

 

 

 

 

 

 

약사전(藥師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97호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이 건물은 동방의 정유리 세계(淨瑠璃世界)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중새으로 하여금 부처의 불성 (圓滿行)을 닦도록 도와주는 약사여래를 모신 법당이다. 약사여래는 동방 세계를 다스리므로, 약사전은 언제나 중심 불전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약사여래는 과거 세상에서 약왕(藥王)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해 12가지의 큰 소원(大願)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거를 상징하는 부처이자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약사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유행하였는데, 당시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자가 속출하자 약사여래는 새로운 구원자로 등장하였다.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병에 걸렸을 때 밀본법사(密本法師)가 '약사경'을 염불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도 국난이 닥쳤을 때마다 약사 도량(藥師道場)을 열어 부처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을 만큼 약사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곳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계 맞배집으로, 1369년 (고려 공민왕 18)에 성곡대사(星谷大)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이후 중건된 것이다. 건축 구조로 보면 통도사의 세 개 영역 가운데 하위 영역(下爐殿)의 중심 불전인 영산전과 유사하나, 영산전과는 위계적 차이가 있다. 우선 건물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전면의 기둥 간격도 영산전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장식 역시 간소하다. 이러한 차이는 중심불인 석가모니불과 약사불의 위계적 차이를 표현하는 건축 수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장식 솜씨 등이 오히려 건물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 안내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