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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齋室)터. 영릉(英陵). 여주시(驪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재실(齋室)터. 영릉(英陵). 여주시(驪州市)

세계속으로 2016. 3. 10. 15:21

재실(齋室)터. 영릉(英陵). 여주시(驪州市). 경기도(京畿道)

 

영릉(英陵/ 세종. 소헌왕후릉) 재실(齋室)터

이곳은 발굴조사 결과 여러 동의 건물터와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영릉(英陵/ 세종. 소헌왕후릉)과 관련된 재실터로 확인(추정)되었다.

즉 상. 하. 남. 북으로 중복된 기단 석렬(石列)과 이들 주변으로 축조된 담장터, 암거시설, 폐기장 등과 함께 백자를 비롯한 기와, 전돌, 토기, 철기 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소조상(塑造像), 와당(瓦當), 인각와(印刻瓦), 묵서명(墨書銘) 백자(天, 伸 등), '祭(제)' '英(영)' 자명 청화백자 등이 발견되었는에, 이와 같이 왕릉 앞에서 대규모 건물터와 많은 유물이 출토된 점을 감안하여 이곳을 영릉의 재실터로 추정하고 있다.

1778년 유의양(柳義養)이 지은 춘관통고(春官通考)에도 홍살문으로부터 동남쪽 250보*(步)의 위치에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보(步)는 주척(周尺) 6자를 1보로 하는 조선시대 거리단위 (1자는 19.91~23.1cm)로서 250보는 약 300~350m 로 추정

 

왕릉의 재실은 산릉제례(山陵祭禮)를 위해 <임금님이 내려준 향(香)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安香廳)>, <제례음식을 만들고 제례를 총괄하는 전사청(典祀廳)>, <제례용 그릇과 옷을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능지기의 거처(居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의 합장릉(合葬陵)으로 1446년 왕후의 승하와 함께 헌릉(獻陵) 서쪽 (서울 내곡동)에 모셨다가 1469년 (예종 원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사지역내 유구 배치도

 

발굴조사 모습

 

출토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