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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용주사(龍珠寺). 화성시(華城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기도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용주사(龍珠寺). 화성시(華城市)

세계속으로 2016. 4. 3. 16:12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용주사(龍珠寺).

화성시(華城市). 경기도(京畿道)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칠성과 산신, 독성이 탱화로 모셔진 곳으로 시방칠등각은 칠성각의 다른 이름이다.


대웅보전과 천불전 사이에 위치하는 전각으로 칠성, 산신, 독성이 탱화로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세 신앙은 불교를 신앙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 수 없는 독특한 한국적 불교신앙으로 우리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하면서 불교이전의 재래 토착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조화롭게 수용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들 재래신앙이 불교와 용합되면서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칠성신앙과 스승없이 혼자서 깨우침을 얻는 독성신앙, 그리고 산신신앙이 한국불교의 한 특성을 이루게 됐던 것입니다.


칠성신과 독성, 산신을 모시는 전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존재합니다. 각각의 신을 따로 모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이 별도로 존재하기도 하고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하여 이들 세 신을 하나의 전각에 함께 봉안하기도 합니다.


용주사의 시방칠등각은 세 신을 함께 모신 전각입니다.
그런데 이 전각 이름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매우 독특합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먼저 시방(十方)이란 동·서·남·북, 동북·동남·서남·서북, 그리고 상·하의 열 곳으로서 무수한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칠등(七燈)이란 칠성, 즉 북두 칠성을 가리키므로 시방칠등각은 결국 칠성각과 동일한 뜻입니다. 이것은 절의 창건 당시 지금과 같은 시방칠등각이 아니라 칠성각이라는 전각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칠성각의 도편수는 경기도 안성 죽산 칠장사(七長寺)의 설잠(雪岑)스님이었고, 전각내에는 칠성여래사방칠성(七星如來四方七星幀)을 경옥(敬玉)·연홍(演弘)·설순(雪順)스님 등이 제작 봉안하였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이덕무가 지은 주련이 걸려있었는데 글귀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만리 아유타국 돌우물에는 공덕수가 널리 젖어들고,팔십경 기타원 좋은 밭에는 길상화가 가득 피었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면적 18평으로 아담한 규모이고 문은 띠살문입니다. 건물외부 측면에는 산신과 독성을 벽화로 묘사하였으며 내부에는 정면에 칠성탱화, 그 왼쪽에 산신탱화, 오른쪽에 독성탱화가 있고 최근작인 소규모의 석조 석가상이 안치되어있습니다.


칠성탱화

가로 270㎝, 세로 150㎝로 1935년에 제작되었습니다. 화면 중앙에 치성광여래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였습니다. 상단 좌우에는 칠여래가 있고, 하단 좌우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있습니다.


원래 칠성신은 중국의 도교신앙에서 형성된 후 우리나라에 유입되어서는
여러 신중(神衆)의 하나로 보고 신중탱화 속에서만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칠성에 대한 신앙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독립된 신앙형태를 지니게 되었고, 그에 따라 신중탱화에서 분화된 별개의 칠성탱화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칠성의 주불(主佛)인 치성광여래는 가람수호의 기능과 함께 약사여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여 자식이 없거나, 아들을 기원하거나, 또는 자식의 수명을 비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용주사의 칠성탱화는 도석의궤에 충실히 따라 조성한 탱화로 그 신앙적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산신탱화

칠성탱화의 왼쪽에 위치하는데 가로 120㎝, 세로 130㎝로 1942년 작입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련없는 토착신이었으나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신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있어 가람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합니다. 산신탱화는 우화적으로 표현한 호랑이와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용주사의 산신탱화에도 소나무와 산을 배경으로 중앙에 노인과 호랑이가 보입니다. 노인 오른쪽에는 등에 술병을 메고 오른 손에 과일바구니를 든 아낙이 있고 노인의 뒤에는 부채질하는 소년이 시립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산속에 나들이라도 나온 듯한 한가로운 모습입니다.


독성탱화

칠성탱화의 오른쪽에 위치하는 가로 120㎝, 세로 130㎝의 1942년 작입니다.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성인으로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般尊者)를 봉안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독성은 원래 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석가불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의 천태산(天台山)에 머무르다가 말세중생의 복덕을 위하여 출현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독성탱화는 나무와 산, 즉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여 늙은 비구가 석장(錫杖)을 짚고 앉아 있거나 편안한 유희좌(遊戱坐.)를 취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동자가 차를 달이는 모습을 하거나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독특한 독성신앙이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용주사의 독성탱화는 나무와 산과 꽃, 그리고 새가 어우러진 천태산을 묘사하고 유희좌를 취한 나반존자와 차를 끓이는 동자를 묘사합니다.

- 출처 : 용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