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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極樂殿). 봉정사(鳳停寺). 안동시(安東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상북도

극락전(極樂殿). 봉정사(鳳停寺). 안동시(安東市)

세계속으로 2019. 6. 23. 16:39

극락전(極樂殿). 봉정사(鳳停寺). 안동시(安東市). 경북(慶北)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이 건물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주심포) 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1972년에 실시한 보수공사 때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 첫 수리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 인조(仁祖) 3년(1625), 순조(純祖) 9년 (1809) 3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大藏殿)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이라 이름을 바꿨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拱包)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돌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하였으며 전면과 후면 중앙칸에 판문(板門)을 달고 양쪽에는 살창을 내었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1972년 보수공사때 고증을 통하여 고형(古形)으로 복원한 것이다. 법당의 중앙 뒤쪽에 2개의 기둥을 세워 불단(佛壇)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건물이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柱心包)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극락전 해체 보수공사 때에 1625년(인조3)에 작성한 상량문을 발견하였다. 이 상량문은 '천계 5년 3월'에 중수하면서 작성한 공사 기록인데, '前中創至正 二十三年 癸卯 三月日'이라는 구절이 있다. 중창은 중창(重創)을 의미하며 지정 23년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께서 개창하였다고 상량문의 신라 때에 창건은 이를 가리킨다. 공민왕 1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이보다 오래 전에 이미 건물이 조영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갑석을 올리고 크기가 다른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구조이다.


이 건물은 감실형으로 주벽이 토벽으로 밀폐되고 따로 낸 문얼굴에 널빤지 2장을 사용한 문짝을 달았고 좌우 협칸에는 살이 각 11개가 달린 광창이 있다. 공포는 외 1출목 주심포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가구는 9량가인데 그 구성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주 2본이 뒤쪽에 있다. 그러나 평주상의 대량과 퇴량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높이로 만들어진 특색을 보인다. 다른 법당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대량은 단면이 청자매병의 윤곽을 연상시킨다. 굵지않은 목재를 홍량으로 다듬어 걸었는데 이로 인하여 중첩하는 부재가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맛을 덜고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건물의 내부는 바닥에 방전을 깔고 뒤쪽에만 2개의 고주를 세워 그 사이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하였다. 불단 위에는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였는데, 그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몸을 짜맞춘 뒤 다포식 구성을 지닌 지붕을 씌워 집을 마련하였다.


극락전이 지닌 몇 가지 특징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까지 계승된 이른바 고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곡면으로 내반되어 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고 있는 점, 첨자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양식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에는 아미타불을 전각의 가운데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하여 그 위에 봉안하고 있고 좌우 협시보살은 모셔져 있지 않다. 단지 불단에는 높이 100cm정도의 아미타불만 모시고 있지만 불단의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삼존도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高宗)37년인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는 가로 195cm, 세로176cm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5cm폭의 흰 테두리를 두르고 중앙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그려 전체적으로는 아미타불의 관배를 감싸듯이 배치된 구도를 가지고 있다. 탱화의 표현 기법은 본존불의 경우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상체보다 두부(頭部)를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왼손은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는데 손가락 끝이 뾰족하지만 우아한 곡선미를 간직하고 있다. 광배는 원형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그렸다.


좌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은 본존불을 향하여 약간 틀어 앉은 자세를 취하고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그려진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고 왼손은 연꽃 줄기를 잡고 있다. 우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칭되는 자세를 취하고 보관(寶冠)에 보병(寶甁)을 표시하고 경책을 받쳐들고 있다. 본존불의 두광 좌우에 합장한 아난과 가섭존자가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고, 그 위로 화면의 여백없이 구름을 화려하게 그렸으며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광선을 그려넣었다. 탱화하단 중앙에도 한덩이 구름을 그려서 아미타여래가 극락세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출처 : 봉정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