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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上黨山城). 청주시(淸州市 ) 본문

나라안 나들이/충청북도

상당산성(上黨山城). 청주시(淸州市 )

세계속으로 2011. 2. 4. 16:00

상당산성(上黨山城). 청주시(淸州市). 충북(忠北)

 

상당산성 上黨山城

사적 제 212호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상당산성은 둘레 4.1 km, 내부 면적 726,000 m2  에 달하는 포곡식(包谷式) 석성이다.

상당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縣) 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남문 밖에서 발견된 옛 기와의 명문(銘文)을 통해 통일 신라의 서원경과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영호남과 서울로 통하는 통로를 방어하는 요충지로 크게 주목 받았다.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충청도의 군사 책임자인 병마절도사는 청주읍성에 있었으며, 그 배후인 상당산성에는 병마우후(兵馬虞侯)를 두어 방어하게 하였다.

상당산성에는 대략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어 산성의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부터 영조 23년 (1747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이때 성벽 축조는 물론 성내에 구룡사 및 남악사와 장대사의 3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으며, 관아 건물과 장대. 포루. 창고 등이 완성되어 면모를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보수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은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고 3개소가 남아 있다.

- 안내문에서 -

 

 

 

 

 

 

 

 

 

 

 

 

 

 상당산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다. 둘레가 4.2 km,  내부면적이 727,276 m2  에 이르고 있으며, 전형적인 포곡식 내탁공법의 성이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중인 선조 29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에서 45년까지 충청병사 유성추의 감독으로 대대적인 성벽개축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후 여러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성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 군기고, 창고, 수구, 장대, 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등에 의하면 효종 2년(1651년)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충남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지고, 왜구의 침입과 내란 등으로 한성의 중간 방어 지역으로 청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 가면서 상당산성의 개수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 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동장대에서는 매년 시민의 날에 국운융성, 청주 발전, 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삼원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성돌이 행사가 시작된다.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성내에는 전통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민속주인 대추술과 함께 다양한 민속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 안내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