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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雁鴨池). 경주시(慶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상북도

안압지(雁鴨池). 경주시(慶州市)

세계속으로 2012. 1. 15. 15:52

경주 임해전지(慶州 臨海殿址). 경주시(慶州市). 경북(慶北)

guide.gyeongju.go.kr

 

사적 제 18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26-1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그 안에는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과 정원이 있었다. 신라 문무왕 14년 (674)에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을 길렀다.

임해전은 931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군신들의 연회나 귀빈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못 이름은 원래  월지였는데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 들어 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게 되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안압지의 모습을 거의 확인하였고,  임해전터에서 출토된 보상화문전에 새겨진 기년명으로 궁궐의 축조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 안내문에서 -

 


 

발굴건물터

발굴 조사결과 안압지 주변에는 26개소 (주 건물터 및 회랑터)의 크기가 각각 다른 건물터가 확인 되었고 그중 연못 서쪽 가의 5개 건물터 중 3개소에만 건물을 추정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현하였다.

그 나머지 23개소의 건물터는 발굴된 유구를 발굴 전의 형태로 덮고  그 위를 성토하여 건물의 기단부를 새로 만들어 재현하였다

초석은 신라 시대의 초석 모습 그대로 화강석을 사용하여 재현하였다.

이들 건물터 중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임해전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새로 만들어 놓은 초석은 모두 287개로 회랑터를 제외한 주건물터에만 설치하였다.

- 안내문에서 -

 

 


복원건물: 제 1건물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가의 5개 건물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 (제 1, 3. 5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유물을 본따 신라 시대의 원형대로 추정 재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목조 팔작지붕으로 건평 103M2,  건물높이 9M의 누각 형태이다.

- 안내문에서 -

 

 


월정교(月精橋) 모형(模型)

월정교는 통일신라 최전성기인 경덕왕 19년 (760년)에  조영된 대규모 회랑식 건물양식의 루교로서 왕궁인 월성의 출입통로이다.

본 모형은 월정교 복원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현재 월성의 서남단에 발굴된 월정교지에서 복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월정교 규모 : 길이 63 m, 폭 9.0 m  높이 9.0 m (루교 17.3 m)

  모형축척 : 1/15

  제작자 : 최 기영 대목장 (중요무형문화재 제 74호)

- 안내문에서 -

 

 

 

 

 

 

 


석조유구(石造 遺構)

건물터를 따라 연결되어 있는 이 석조유구(石造 遺構)는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서 발굴 조사에서 나타난 그대로를 노출시킨 것이다.

화강석으로 된 이 석조 유구(石造 遺構)는 건물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흐르도록 만든 뚜껑 없는 배수로로 생각되며 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 그 끝은 연못에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있는 석조유구(石造 遺構)는 그 일부분으로서 길이가 83 m 이다

- 안내문에서 -

 

 

 


복원 건물(復元 建物) : 제 3건물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가의 5개 건물터 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 (제 1, 3, 5 건물)은 원래 기단부(基壇部)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축부재는 목부재(木部材)와 기와 등 출토 유물(出土 遺物)을 본따 신라시대의 원형대로 추정 재현(推定 再現)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5간, 측면 4간의 단층 목조 팔작지붕으로 건평 187 m2,  건물높이 10 m 의 누각(樓閣) 형태이다.

- 안내문에서 -

 

 

 

 

 

 

 

 

 


납석으로 만든 뚜껑있는 작은 단지 와 곱돌 향로 뚜껑.

 

 토기인화문병. 토기인화문파수부소호, 토기인화문병

 납석제품

곱돌(蠟石)은 무르기 때문에 조각하기에 좋은 재료이다. 안압지에서는 곱돌로 된 뚜껑을 비롯, 작은 단지. 사자상, 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곱돌향로뚜껑은 사자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훌륭한 작품이다. 사자의 몸통 안이 뚫려 있어, 향 연기가 코와 입을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다. 생활용기를 제작할 때 여러가지 재료가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안내문에서 -

 

 토기

신라 청자완, 당나라 백자 등 다량의 도자기를 비롯해 방대한 양의 토제품이 출토되었으며, 주요 유물로는 실생활에 사용하기 편리했던 굽다리 접시, 완, 뚜껑, 접시 등이 있으며, 이 밖에 등잔, 그릇뚜껑, 뼈단지, 장군형 토기. 시루, 풍로, 매병모양 토기, 녹유토기 조각이 출토 되었다.

- 안내문에서 -

 

 

 주령구

연희장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놀이기구의 하나로, 육각형이 8면, 정사각형이 6면인 14면체로써, 참나무로 만들었다. 각 면에슨 주령구를 굴린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글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이를 통하여 당시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풍류를 짐작할 수 있다.

- 안내문에서 -

 

 

 

  


복원건물 : 제 5건물

발굴 조사결과 확인된 연못 서쪽가의 5개 건물터중 현재 복원된 3동의 건물 (제 1, 3. 5 건물)은 원래 기단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건북부재는 목부재와 기와 등 출토유물을 본따 신라 시대의 원형대로 추정재현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목조 사모 지붕으로 건평 43.5 m2 (13.17 평), 건물높이 9 m(30자)로서 이 건물터 주변의 연못 속에서 나온 많은 돌난간 부재를 본따 난간을 복원하였다.

- 안내문에서 -

 

 

  

 

 


수조유구

화강석으로 만든 이 수조는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는 입수로에 놓여 있는데 40 cm(1자 3치) 높이의 차이를 두고 2개가 연결되어 있다.

반월형으로 안쪽을 깍아 내어 물을 고이게 하였고 가장자리에는 용(龍)으로 보이는 조각의 흔적이 있다.

수조 좌우에는 큰 판석을 놓고 가장자리에는 벽서을 세워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물놀이를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잔잔히 흐르는 물을 모아 폭포을 이루어 연못으로 흐르도록 변화를 주었다

      수조길이 : 2.5 m (8자 3치)

      너      비 : 1.6 m (5자 3치)

- 안내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