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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전시실. 백제군사박물관. 논산시(論山市) 본문
제 2 전시실. 백제군사박물관. 논산시(論山市). 충남(忠南)
안악 3호분 행렬도 (安岳 3號墳 行列圖)
Plot Plan of No. 3 Tomb in Anak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옛 지명 : 황해도 안악군 용군면 유설리)에 위치한, 서기 357년의 동수묘(冬壽墓)로 불리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길이 10 m에 이르는 회랑의 'ㄱ 형' 벽면을 가득 채운 웅장한 대형렬도이며, 안악 3호분의 벽화 중 당시 고구려의 군사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250여 명의 무장한 무사 등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다양한 무기를 파악할 수 있다. 말을 탄 기병, 방패를 들고 있는 보병, 활을 들고 있는 궁수(弓手), 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는 부월수(斧鉞手), 각종의 악기를 들고 있는 군악대 등 군부대 내의 무장 체계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삼국시대에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삼국의 하나인 백제는 멸망에 이르기까지 주변 나라인 고구려. 신라와 끊임없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당시 고구려의 행렬도를 통해 고구려와 대등하게 전쟁을 치른 백제의 군사력을 시각적으로 유추 할 수 있을 것이다.
- 안내문에서 -
칠지도
Knife with Seven Blades
백제
일본 나라현 텐리시 이소노카미신궁
길이 74.9 cm
곧은 칼몸 좌우로 가지칼이 각각 3개씩 뻗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칠지도'라고 한다. 쇠를 두드려 만든 양날칼이며, 칼날의 앞뒤에는 61자의 명문이 금상감되어 있다. 지금까지 명문해석과 관련하여 칼의 제작연대를 비롯하여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인가. 아니면 헌상한 것인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과거 일본학자들이 자의적인 명문해석에 근거하여 고대 일본이 가야 지역을 200년동안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의 주요한 근거로 삼기고 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4세기 후반에 백제왕이 왜왕에게 칼을 하사했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칠지도는 실제 전투에서 사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의례용 칼로써 제작되었다고 이해된다. 백제의 수준 높은 제철기술은 물론 고대 한일관계를 살피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 안내문에서 -
선사시대의 무기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주변에 산재한 자연상태의 돌을 이용하여 무기로 가공하였다.
구석기시대에는 자연 상태의 돌을 약간 가공하여 주먹도끼나 찍개등을 무기로 사용한다.
신석기시대에는 구석기시대의 석기제작기술이 발달하여 창, 화살촉, 도끼 등이 만들어지며, 청동기 시대에는 무기의 주된 재료가 돌에서 청동으로 대체되나 여전히 돌을 무기의 재료로서 사용한다. 신석기시대의 갈아 만든 무기가 더욱 세련되고 발전하여 사용되며 간돌검과 '달도끼'로 불리는 바퀴날도끼 그리고 '별도끼'로 불리는 톱니날도끼 등이 새로이 나타난다.
선사시대의 무기는 생활재료를 구하기 위한 생산도구로서의 기능과 먹이 사냥을 위한 사냥도구로서의 기능이 중심이었다.
주먹 도끼 돌촉
돌화살촉
간돌검 세형동검
선사. 청동기 시대
도검류 (Swords)
고대 전투에서 찌르거나 베는 무기로 양쪽면에 날이 있는 것을 검(劍), 한쪽 면에 날이 있는 것을 도(刀)라고 한다. 길이에 따라 대검(大劍), 대도(大刀), 단검(短劍), 단도(短刀), 손칼(刀子)로 나뉜다.
삼한시대에는 주로 단검을 사용하였는데, 이전의 세형동검을 계승하여 짧은 손잡이 구조를 가진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광주 신창동 출토품은 나무로 단검을 만든 점이 주목된다. 삼국시대에는 검보다는 환두대도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칼집. 칼자루. 고리에 금. 금동. 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환두대도는 신라, 가야의 큰 무덤에서만 출토된다. 환두대도의 장식에는 문양이 없는 것, 나뭇잎 모양의 삼엽(三葉), 환두부 자체를 둥근 고리 3개로 이어 붙인 삼루(三葉), 용(龍), 봉황(鳳凰), 용봉문(龍鳳文) 등이 있다. 환두부 안에 용문이 있는 것은 백제와 신라의 가장 큰 무덤에서 나오며,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용문환두대도를 통해 당시 왕 급의 계급만이 이러한 환두대도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 안내문에서 -
용문환두대도 은상감환두대도
도검류
창(槍)류
창은 삼국시대 가장 일반적인 무기로 많은 무덤에서 출토되며 출토양도 많다
그 중 철모는 창(槍)의 한 종류로 투겁에 나무자루를 끼운 것이다.
철모는 양손에 쥐고 끝 쪽을 적을 향해 직선으로 찌른 것으로 보병의 주요 무기이며 말을 탄 적을 상대할 때 효과적인 근거리무기이다.
철모는 긴 자루의 끝에 때로는 창고달 (물미)과 함께 출토되기도 한다.
백제의 철모는 형태에 따라 방추형(方錐形), 검신형(槍身形), 가지창(二枝槍, 三枝槍) 등이 있다. 대부분의 철모는 방추형과 검신형이며 가지창의 경우는 부여 부소산성에서 이지창과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에서는 삼지창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천안 용원리 출토품은 백제지역의 출토품 중 비교적 대형으로 원반형태의 고리를 자루부분에 끼워 나무자루의 착장을 보다 견고히 하고 있으며 무령왕릉 출토의 철모의 투겁에는 은을 씌워 장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활. 화살 (Bows & Arrows. 弓矢)
활
활과 화살은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무기 중 멀리 있는 적을 살상하는 원거리 무기로 고대 무기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활과 화살은 대부분 유기물질로 썩어 없어지고 화살촉만이 남아 있다. 활은 활의 길이에 따라 보면 장궁. 단궁으로 나뉘는데, 장궁은 삼림이나 해안지대 민족들이 주로 사용하며 말을 타고 다니는 기마민족들은 주로 단궁을 사용하였다. 백제지역에서는 나주 신촌리 9호분. 광주 신창동 저습지 출토품 등이 일부 남아 있다.
화살
화살촉은 크게 화살촉의 뿌리가 없는 것(
쇠살촉
도끼류 (斧. Axes)
도끼는 가장 대표적인 타격무기로 선사시대로부터 사냥이나 생활도구로서 사용되어 왔다. 도끼는 시대에 따라 돌도끼, 청동도끼, 쇠도끼 등으로 발전하였으며, 철의 본격적인 사용과 더불어 무기로서 크게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쇠도끼는 제작방식에 따라 주조와 단조로 나뉘고 구조와 형태에 따라 세분화 된다. 주조쇠도끼는 주물 틀을 이용한 거싱고 단조쇠도끼는 두드려 제작 한 것이다.
쇠도끼가 삼국의 중요한 무기의 하나인 사실은 부소산성 유적이나 공주 용원리 출토 사실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러한 도끼들은 도구로서의 기능도 겸하였다.
군대의 숙박시설의 구축이나 축성을 위하여 많은 도끼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성을 공격할 때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굴을 파는 데에도 도끼가 이용되었다.
도끼류
낫류 (Sickles. 鎌)
기병전을 많이 한 삼국시대의 전투에서는 중무장한 적의 기병을 말아래로 떨어 뜨리는 것이 중요함으로 이때, 떨어뜨리기 위해 걸어 당기는 무기가 필요하게 된다.
이때의 대표적인 무기가 철겸(낫)이다.
철겸(낫)은 전통적으로 농구인 낫이나 유사시에 긴 자루에 달아 말탄 적을 말 아래로 끌어 당기는 무기로 적절히 사용하였다.
무기용 낫으로 만들어진 것은 농기구로 사용된 것보다 크고 창과 같이 자루 끝에 물미를 꽂아 사용되기도 한다.
공주 하봉리 유적의 철겸을 보면 자루 끝에 물미를 장착하여 무기로 사용하였음을 보여준다.
갑주류 (Mail Armors. 甲胄)
갑옷과 투구는 방패와 함께 방어용 무구()에 포함된다. 방어용 무기 중에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무사가 타고 있는 말을 보호하기 위한 말갑옷과 말투구도 있다.
갑옷과 투구는 뼈나 가죽 그리고 쇠 등으로 만들어졌으나 거의 쇠로 만든 갑옷과 투구만이 남아있다. 갑옷에는 판갑옷()과 비늘갑옷이 있다. 판갑옷에는 길고 넓적한 여러 개의 철판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어 납작한 못이나 가죽으로 연결한 것.
삼각형의 철판을 못이나 가죽으로 연결한 것, 가늘고 긴 철판을 못이나 가죽으로 연결한 것 등이 있다. 비늘갑옷은 일정한 크기의 작은 철판을 이어붙인 것으로 판갑옷에 비해 움직이기에 편하다. 투구에는 반구형의 복발에 세로로 긴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것, 반구상의 주체 앞에 반원형의 챙을 붙인 것, 투구의 평면형태가 살구모양 생긴 것과 비늘갑옷과 마찬가지로 사각형이나 오각형의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것이 있다.
백제지역에서는 갑옷과 투구의 출토양이 적어 구체적인 특성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청주 신봉동에서 출토된 판갑옷의 일부 실물자료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갑옷 등을 통해 백제의 갑옷은 판갑옷과 비늘갑옷이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갑옷은 몸에 맞도록 여러개의 철판을 세모, 네모 모양으로 오린 뒤 이것들을 쇠못 또는 가죽끈으로 연결하여 만든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갑옷으로는 전북 길두리 안동고분과 충북 음성 망이산성에서 출토된 갑옷이 있다
기타 무기류
무기류에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무기 이외에도 다양한 무기가 있다.
산성이 많은 삼국시대에 성곽을 둘러싼 전투가 무엇보다도 많았을 것이며
여기에 사용된 다양한 무기가 있었을 것이다. 성을 사이에 두고 전투를 실시할떄 공격하는 입장에서의 공성무기()와 성을 지키는 입장의 수성무기()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성무기와 수성무기의 대부분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이러한 성곽전투 시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만이 남아 있다.
부여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철제갈고리는 성을 올라간다거나 성에 걸친 사다리 등을 넘어뜨리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성에 접근을 막는 마름쇠 등이 있다.
이 시기 전투에서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주변의 모든 것은 다 사용하였을 것이다.
갈고리
쇠손칼 투환 마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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