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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良洞)마을(4). 경주시(慶州市) 본문

나라안 나들이/경상북도

양동(良洞)마을(4). 경주시(慶州市)

세계속으로 2011. 11. 27. 16:50

양동(良洞)마을(3). 경주시(慶州市). 경북(慶北)

 

 

 

 

 

 사호당 고택(沙湖堂古宅)

이 집은 사호당(沙湖堂) 이능승(李能升)이 헌종 6년 1840에 지어 살던 곳으로, 그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주로 'ㅁ"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의 다른 집들에 비해 'ㄱ"자의 안채에 'ㄱ'자의 사랑채가 있대어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닿아 있는 부분에 곳간방이 있는데, 이 곳에는 문으로 빠져 나올수 없는 커다란 항아리가 들어있다. 독을 먼저 넣고 집을 지은 것인데, 곡식이 돈과도 같았던 시기의 안주인의 위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근암고택(謹庵古宅)

이 집은 정조4년 1780경에 이정수(李鼎壽)(1758-1784)가 지은 것으로, 그의 증손자인 근암 (謹庵)이희구(李熙久)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마을의 여느 집들과 달리 안채의 담장 밖에 따로 사랑채가 서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사랑채는 원래 안채와 직각으로 놓여 있다가 소실된 것을, 20세기 초에 새로 지으면서 현재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랑채의 뒤로는 비탈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후원이 있어, 마을의 전경과 주위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심수정

이 정자는 회재 이언적 1491-1553 의 동생인 농재 이언괄 1494-1553 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하고 형 대신 노모를 모셨다. 여주 이씨 집안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이렇듯 집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상들이 집을 지을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개의 정자중 규모가 제일 크며,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지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 철종 때 불에 타서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

- 안내문에서 -

 

 

 

 

 

 

 

 강학당

이 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 이 고종 7년 1870 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장판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1/3 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 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

- 안내문에서 -